인삼재배의 과정은 황석영의 소설 에 자세히 나온다.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일대에서 최초로 재배에
성공한 인삼을 개성상인들이 받아들여 기업화시키는 과정이 약간의 허구를 통해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.
개성상인 박대근은 어느 날 한 모녀를 만난다. 그들의 말인즉슨
"저희는 일찍이 전라도 화순에서 살았습니다. 저희 이웃 고을인 동복에서는 어떤 이가 벌써 산삼 모종을 내었습니다.
바깥어른도 재배법을 익히셔서 삼포를 마련하시고는 다달이 적어놓으셨어요. 드디어 첫 재배에 성공하셔서 열 뿌리를
견본으로 골라 지니고 오셨스니다. 그렇지만 하루가 한달이요, 한달이 일년이 넘어 어언 삼년이 넘도록 종무소식이라,
저혼자 저것들을 데리고 무작정 송도엘 왔지요. 아마 노상에서 앓다가 돌아가신 게 분명합니다. 그래서 제가 주인의
어깨너머루 모아 두었던 묘포 재배를 해보구 있었습니다. 가장이 돌아오지 않으니 우리두 살 방도를 찾아야지요.
그러나 피땀으로 이루어 놓은 비법을 아무에게나 알릴 수도 팔아넘길 수도 없었습니다."
이렇게 해서 소규모 재배농가의 특산품이 기업적인 상품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얘기다. 하지만 실재로는
연대가 잘 맞지 않는다. 에 박유철이라는 개성상인이 인삼의 기업적 재배에 앞장섰다고 되어있는데
장길산 시대의 인물이라는 박대근과 정조시대의 박유철은 시대가 한참 다르고, 오히려 조선 최고의 거상
임상옥과 비슷한 시대다.
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삼재배의 성공기가 아니라 인삼재배를 할 수 밖에 없었던
민중의 고난기다. 인삼의 가치를 인정받는 만큼 인삼의 쓸모가 지대해지자 인삼이 나는 고을마다 인삼을 바치라는
요구가 쇄도했고, 조선후기로 가면 인삼을 바칠 수 없어 살던 고향을 떠나 떠도는 유민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
정도였다.